[서울=세계뉴스] 전승원 기자 = 날이 갈수록 확산되는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모든 단체 일정이 중단되고 외국 관광객이 취소가 잇따르는 등 국가적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지난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 표본이 배송되는 '배달 사고'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두 가지 상황이 도래됐는데도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들여왔는데도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등 정부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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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 © 세계뉴스 |
■ 사고가 나서야 탄저균 반입 알게 된 정부
지난달 28일 미국 국방부는 유타주의 군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가 죽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은, 살아 있는 탄저균을 한국 오산 공군기지와 미국 내 9개주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탄저균 배달사고'가 확인된 것. 이후 미국 정부 조사과정에서 이 연구소가 살아 있는 탄저균을 잘못 보낸 곳이 한국, 호주, 캐나다 등 3개국과 미국 내 17개 주 등 모두 51곳이었음이 추가로 확인됐다(3일 로버트 워크 미 국방부 부장관 발표). 특히 2008년엔 호주와 캐나다의 연구시설에 살아 있는 탄저균 표본을 보내고도 그동안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주한미군과 공동으로 조사해서 사고 직후인 2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문제의 탄저균 표본은 4주 전인 5월초에 오산 공군기지로 반입됐다. '주피터 프로그램'(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 인식)의 일환으로 새로 들여온 유전자 분석 장비를 6월 5일로 예정된 행사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와 보건복지부도 초청해 시연하는 행사였다.
민간 배송업체인 페덱스(FEDEX)를 통해 들여온 탄저균 표본은 포자 형태의 액체 1㎖ 분량이었고, 냉동돼 삼중으로 포장된 상태였다. 탄저균 표본은 실험실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가 시연 행사를 앞두고 사전처리를 위해 지난달 21일 해동됐다. 그러던 중 지난달 27일 주한미군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표본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표본을 락스 성분의 표백제에 넣어 폐기했다. 다행히 이 실험에 참여했던 미군 소속 군인과 연구원 22명은 어떤 감염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 1998년부터 실험, 의혹 증폭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 주한미군은 "진행중인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미국 'ABC방송'은 탄저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지난 22일 메릴랜드의 한 민간기업이 발견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가 배달 사고를 인식하고도 곧바로 주한미군과 한국에 통보하지 않고 닷새나 흘려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여전히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이용하는 민간 배송 업체인 페덱스가 탄저균 표본이란 위험물질을 어떤 경로로 옮겼는지, 이 과정에서 한국 국민들이 노출됐을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주한미군이 탄저균 표본을 한국에 들여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냐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사고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본 실험 훈련은 최초로 실시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사고 직후에 "1998년 9월 전세계 미군기지 중 가장 먼저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 실험시설을 갖추고 백신을 대량 공급해왔고, 같은 해 오산 미 공군기지에 처음 창설된 세균무기 탐지부대인 화생방방호중대(BIDS)는 이번에 탄저균 표본이 배달된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실의 전신"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면서 주한미군의 해명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 한국이 생화학 실험실장이 된 '주피터 프로그램'
이런 의혹은 '주피터 프로그램'이란 주한미군의 새로운 한반도 생물학전 대응전략의 계획이 공개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2013년 6월부터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그램' 도입에 착수했고 2015년 말 완성을 목표로 실험을 상당히 진척한 상태였다는 것이 프로그램 책임자의 말로 드러난 것이다. 주피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피터 이매뉴얼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ECBC)의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가 2013년 3월19일 미 방위산업협회가 주최한 '화학 생물학 방어 계획 포럼'에서 주피터 프로그램에 착수하기 직전에 이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밝혀놓은 발표 자료가 언론에 포착된 것.
주한미군은 탄저균뿐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라고 하는 보툴리눔A형 독소까지 실험을 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게다가 주한미군은 한국에 서울 용산과 경기도 오산 등 3곳에 실험실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연구소들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오산 공군기지만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와 장소를 밝히지 않은 다른 실험실에서 언제든 이번 탄저균 배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이 전세계적으로 생화학 공격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을 생물학전 현장 '실험실'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매뉴얼 박사가 지난해 12월 미국의 한 군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생물학전 대응 실험 장소로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주한미군 고위급들이 (주피터 프로그램이란) 선진적인 개념을 실험해보길 원했다"고 답했다.
이어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자원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주둔국(한국)도 우호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이 전세계 미군의 생물학전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실험실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 불평등한 SOFA 개정 목소리...합동위는 7월 의제 논의
한국 정부가 정작 주한미군이 탄저균 같은 위험물질을 들여오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큰 문제다. 게다가 국방부 당국자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소가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됐고 어떤 균들이 얼마나 실험됐는지 등에 대해 아직 미군으로부터 구체적 정보를 제공받은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한-미 국방부는 지난 2013년 10월 '한-미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BSP)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생물무기 감시 포털은 △탄저균 △보툴리눔 △두창 △페스트 △야토병 등 10여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지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한-미 공조 체계다. 이것은 주피터 프로그램의 한 분야로 한국과 미국이 협약까지 체결해 진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미군은 탄저균과 같은 위험물질 반입과 실험에 대해서는 한국에 사전에는 물론 사후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 허울뿐인 양국 공조 뒤에서 일방적으로 생물학전 대응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군이 한국 정부에 위험물질 반입을 통보하지 않은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그렇게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협정 9조(통관과 관세)는 "미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 화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세관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불평등한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세계 3대 미군 주둔지인 한국·일본·독일 중에 미군 병력 규모·무기체계의 변화, 위험 무기의 반입이 있을 때 사전에 통보하고 협의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우리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미군의 탄저균을 관리·감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연 당정협의에서 "오는 7월 예정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 회의에서 탄저균 배달사고와 관련해 모든 위험 가능성 물질의 국내 반입이 철저한 통제 아래 진행되도록 협정 운영방법 및 절차상 문제점을 의제로 논의하겠다"고 결정했다.
메르스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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