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정관계 '수평적 협력' 내세워…이재명 정부 성공과 민주당 변화 동시에 겨냥
[한국행정신문 = 전승원 대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7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3차 전국당원대회를 열고 김민석 전 국무총리를 새 당대표로 선출했다.
김민석 신임 대표는 이날 당대표 선거에서 선호투표제 결선 결과 54.08%를 얻어 45.92%를 얻은 정청래 후보를 8.16%포인트 차로 제쳤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3위 송영길 후보의 2순위 표를 김민석·정청래 후보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최종 당선자가 결정됐다.
김 대표의 당선은 단순한 당권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이 다시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면서 당과 정부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당과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당청 관계를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 관계'로 만들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이 뛰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강한 선명성과 속도를 앞세웠던 정청래 체제와는 다른 당 운영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김민석 체제 출범을 계기로 당정 간 조율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대에 국회 입성…최연소 의원에서 서울시장 후보까지
김민석 대표의 정치 인생은 20대 운동권 정치에서 출발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냈으며, 1990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민주연합당과의 통합 과정에 참여하면서 '민주 통합의 첫아들'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당시 32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고, 16대 총선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를 밀착 수행하며 정권교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과정에서는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38세의 나이로 당시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이후 정치적 내리막
김 대표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큰 변곡점 가운데 하나는 2002년 대선이다. 그는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미국 뉴욕주립대와 중국 칭화대 등에서 유학하며 정치권 밖에서 상당 기간을 보냈다.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정치적 재기를 알렸지만 정치자금법 사건으로 다시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2010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됐다.
김 대표에게는 정치적으로 가장 큰 굴곡의 시기였다. 그러나 정치적 생명은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원외정당인 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통합하면서 다시 민주당으로 복귀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하면서 약 10여 년에 걸친 정치적 공백을 극복했다.
이재명과 인연…친명 핵심으로 부상
김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2022년 대선이다. 당시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면서 친명계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
이재명 대표 시절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2024년 출범한 이재명 2기 지도부에서는 수석최고위원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치적 행보를 가까이에서 뒷받침하는 핵심 인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후 이재명 후보의 대선 승리를 지원했고, 새 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7월 제49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정부 공식 기록에서도 김민석 전 총리는 이재명 정부의 제49대 국무총리로 기록돼 있다.
'새벽 총리'에서 집권여당 대표로
김민석 전 총리는 취임 당시 자신을 '국민의 새벽을 지키는 새벽 총리'라고 표현했다. 취임사에서는 "청춘은 의분이었고 삶은 곡절이었지만 축복이었다"고 자신의 정치 인생을 회고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약 1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뒤 지난 7월 1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 당과 국회로 복귀했다.
이임사에서 그는 새 정부 출범 당일 지명돼 1년간 임무를 수행했다며 APEC 성공, 글로벌 AI 허브 유치, 의대생 복귀, 행정부 내란청산, 광주·전남 통합, 새만금 투자 지원 등을 주요 성과로 거론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민주당 당대표가 됐다. 20대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뒤 서울시장 후보, 야인, 최고위원, 정치자금법 사건, 피선거권 제한, 원외정당 창당, 국회 재입성, 친명계 핵심, 국무총리를 거쳐 결국 집권여당 대표에 오른 것이다.
'당정 일체' 아닌 '수평적 협력'이 시험대
김민석 대표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관계 설정이다. 이재명 정부와 정치적 호흡을 맞춰온 김 대표인 만큼 당정 간 충돌을 줄이고 국정 추진력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김 대표가 강조한 '창조적 수평 관계'가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구현될지가 핵심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면서도 당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김민석 체제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전당대회 분열 봉합도 과제
두 번째 과제는 당내 통합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김민석·정청래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친명계 내부에서도 세력 경쟁 양상이 뚜렷했다.
최종적으로 김 대표가 당권을 차지했지만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정청래 전 대표 측 인사들이 상당수 지도부에 진입하면서 당내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김 대표 쪽으로 기운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경쟁했던 정청래·송영길 후보와도 함께하겠다는 통합 메시지를 냈다. 당대표가 된 순간부터 경쟁자를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ms2030'…대권 잠룡으로 부상하나
김 대표의 정치적 행보는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는 이미 20대부터 정치권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았고, 38세에 서울시장 후보가 됐으며, 국무총리와 집권여당 대표까지 경험하게 됐다.
특히 앞으로 치러질 재·보궐선거와 2028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따라 김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기보다는 당대표 임기 동안 집권여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평가가 타당하다.
김 대표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이메일 아이디 'ms2030'이 정치적 대망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정치권에서 회자돼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관측에 해당한다.
김민석 대표의 정치 인생은 다시 한 번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다. 운동권 출신 최연소 국회의원에서 시작해 정치적 추락과 복귀를 거듭한 그가 이제 집권여당 대표라는 마지막 승부처에 섰다.
그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강한 여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면서도 국정에 책임을 지는 '책임 여당'을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 2년의 정치가 답하게 될 전망이다.
김민석 신임 민주당 대표 약력
▲ 1964년 서울 출생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 전국학생총연합 의장 ▲ 199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 입문 ▲ 제15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을) ▲ 제16대 국회의원 ▲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 민주당 최고위원
▲ 원외정당 민주당 창당 ▲ 제21대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 ▲ 제20대 대선 민주당 중앙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 ▲ 제21대 대선 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공동선대위원장 ▲ 제49대 국무총리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김민석 신임 대표의 당선 수락연설 전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원께 감사드리고, 국민께 감사드리고,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1인 1표의 전도사이신 정청래 후보님, 준비된 지도자 송영길 후보님, 저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지신 두 후보님께 감사드립니다. 영광이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뛰어서 앞으로도 최고위원으로서 같이 일하게 될 최고위원, 우리 동지들, 그리고 아쉽게도 낙선하신 동지들, 그리고 마지막에 경선에서 함께하지 못했던 우리 최고위원 후보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스무 살의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공인의 길에 선 지 40년 만에 대한민국 유일의 역사정당이자 세계 최고 K-민주주의 선도정당 민주당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제 몸처럼 사랑하는 민주당이어서 명예롭고, 1인 1표 당원 주권의 첫 선택이라 역사적이고, 평생 스승 김대중의 뒤를 이어 감격이고, 평생 동지 이재명의 길을 이어 뿌듯하고, K-황금시대 사명이 있어 막중합니다.
아들 때문에 거리의 투사가 되어 전경에게 장미를 건넸던 어머니가 생각나 울컥하고, 아버지와 동갑인 곧 100세 권노갑 고문님께서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 주셔서 울컥하고, 18년 광야 생활을 지켜봐 준 벗들 앞이라 울컥하고, 긴 세월 힘들었지만 견뎌낸 제 자신에 울컥합니다.
제 40년 정치 한 줄 결론은 '하늘과 국민이 가장 두렵고 감사하다'입니다. 겸손, 겸손, 겸손의 '삼겸'의 다짐이 저를 지켰고, 공부, 공부, 공부, 공부하는 정치가 저를 키웠고, 결국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무서운 반성이 저를 살렸습니다. 하여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의 격려가, 응원이, 비판이, 질책이 모두 한없이 감사합니다.
전대 기간 말씀드리고 약속한 모든 것을 다 지키겠습니다. 불가피한 변경이 필요할 때는 설명을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당을 바꾸겠습니다. 언어도, 정책도, 태도도, 문화도 진화할 것입니다. ABC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재명 정부의 ABCD 성장 전략을 짰습니다. 이번에는 민주당 ABC 플랜입니다. A,F,O,R,D,A,B,I,L,I,T,Y. Affordability, 먹고사는 민생 정치, 생활비 정치. B.R.O.A.D. Broad, 크고 넓은 덧셈 정치, 확장 정치. C,O,M,P,E,T,E,N,C,E. Competence, 유능한 정치, 유능한 민생 중심, 다수 정당, 민주당이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매일 민주당의 새 뉴스가 나갑니다. 오늘부터 매일 민주당은 새벽부터 뜁니다. 오늘부터 매일 민주당은 역사정당, 민주정당을 넘어 국민의 삶, 책임정당이 될 것입니다. 당청 관계, 당정 관계는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 관계가 될 것입니다. 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 주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뛸 것입니다. 그 성공이 국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 성공을 위해 토론하고, 직언하고, 방패가 되고, 민심 창구가 될 것입니다.
정청래, 송영길 함께 뛸 것입니다. 제가 그 장을 넓게 열고 함께 모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당내외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내우외환의 풍파가 몰아닥칠 것입니다. 몇십 년간 쌓아온 인내와 작은 지혜로 이 외우내환을 동지들과 함께 신임 지도부와 함께 반드시 돌파해 내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민주당입니다. 우리는 다시 뜁니다. 우리 민주당이 책임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당원 여러분, 황금시대로 함께 갑시다. 낙오 없이 소외 없이 차별 없이 함께 갑시다.
이제 전당대회를 마치고 새로운 민주당의 당대표 자격으로 그동안 애쓰셨던 당원 여러분께 그간의 긴 당내 경선의 장정에 고단을 씻고 국민 여러분께 민주당 집권당이 더 잘하겠다는 그런 결의를 담아 이제 인사 올립니다. 민주당이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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